흔히들 국민의 4대 의무라고 하는 것에 ‘국방의 의무’가 포함되듯이 병역의무는 대한민국이 생긴 이래,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존재해온 것처럼 이야기되곤 합니다. 그러나 한 꺼풀 들춰보면 강제로 부과된, 많은 이들이 불법적이거나 합법적인 방식으로 이를 기피해온, 당연함과는 거리가 먼, 강제된 의무였습니다. 그리고 오랫동안 이 의무를 거부한 이들은 감옥을 가야 했습니다.

병역거부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병역의무에 대해 질문하고 저항해왔습니다. 해방 이전부터 여호와의증인 병역거부자들이 있었고, 1950~1970년대에는 일부 평화주의 종교인들이, 1980년대~1990년대에는 양심선언을 한 군인들과 전경들이, 2000 년대 이후부터는 정치적 병역거부자들까지, 한국 병역거부운동의 역사는 한국 징병제의 역사보다도 오래된 것입니다.

시민들을 강제진압하라는 명령을 거부한 전투경찰, 한국군의 이라크 파병에 반대하며 휴가에서 복귀하지 않은 이등병, 군대에 가는 것이 더 이상 나와 이웃을 지키는 일이 아님을 알고 입대를 거부하거나 입대한 뒤 명령을 거부했던 다양한 사람들. 민주화운동, 이라크 파병,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용산 참사, 세월호 참사 등 한국 사회에 큰 이슈가 있을 때마다 병역거부운동은 병역거부라는 직접행동을 통해 평화에 대해 이야기하고, 지금 일어나고 있는 국가폭력과 전쟁에 저항했습니다.

병역거부를 하려면 뭔가 근사하고 대단한 신념, 특별한 양심이 있어야만 할 것 같지만, 꼭 그런 것만은 아닙니다. 기존 질서에 의문을 갖고 마주하는 이들, 질문을 던지는 이들, 그리고 저항하는 방법을 찾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병역거부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의문과 질문, 움직임 들이 지속되어 지금은 기후위기, 페미니즘, 동물권, 반군사주의 등의 다양한 맥락에서 병역거부를 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습니다.

2018년, 평화인권활동가들과 병역거부자들의 노력으로 헌법재판소가 대체복무제가 없는 병역법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고, 국회에서 대체복무를 법률로 만들어 2020년부터 대체복무제도가 도입되었습니다. 병역거부자들이 감옥에 수감되는 것 대신 다른 방식으로 복무를 하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죠.

그렇다고 병역거부 문제가 완전히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징벌적인 대체복무제 개선이라는 과제뿐만 아니라, 반전운동의 한 방법으로서 병역거부가 품고 있는 군대와 국가에 대한 여러 고민들은 더 다양하게, 더 넓게 퍼져나가야 합니다.

전쟁이 가득한 세계에서 병역거부운동은 해야 할 일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렇게 군사훈련의 의미에 대해, 우리의 의무와 권리에 대해, 군대의 존재에 대해 더 많은 사람들이 고민하고 생각을 나누고 실천한다면 그 과정에서 우리가 바라는 평화는 한걸음 더 우리 곁에 다가올 것입니다.